1. 왜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는가?
다른 분야와는 달리 컴퓨터 사이언스 (CS)는 논문을 주로 저널이 아닌 학회에 제출한다. 미국에 있는 CS에 소속된 연구실에서 논문을 저널에 낸다고 하면, 졸업하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낭비하는, 반쯤 정신 나간 사람 취급받는다.
하지만, 왜 유독 CS만 학회에 집중하느냐고 물어보면 다들 대답이 다른데, 그중에서 공통된 대답은 "CS분야는 발전이 빠르므로 논문을 출판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저널보다는, 논문 리뷰와 출판이 빠른 학회에 좋은 논문들을 내기 시작했다는 것".
하지만, 이 대답에 선 듯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본인이 연구하는 분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나도 비록 CS를 전공하고 있지만, 유독 CS만 발전이 빠른 분야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요즘 학회들이 대부분에 논문들에게 Major revision이나 Minor revision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저널과 학회 간에 논문 리뷰와 출판에 소요되는 시간의 간격이 많이 좁아졌다. 예를 들자면, 최근 내가 출판한 논문의 경우, 2021년 4월에 최초로 논문을 제출했고, 2021년 7월에 Major revision을 받았다. 한데, 수정해야 하는 사항들이 많아서 2021년 12월에야 다시 수정된 논문을 제출했고, 2022년 3월에 최종 결과를 받았다.
논문 제출하고, 출판되기까지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되면 저널이랑 학회랑 무슨 차이가 있나 싶다. 그럼 논문 수정 요구 없이 한 번에 게재 승인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최종 게재 승인된 논문 중에서 37% 정도의 논문들 만이 수정 요구 없이 한 번에 게재 승인되었다. 즉, 다른 63%의 논문들은 수정을 해서 다시 제출해야 했었다는 것이다.
2. 어떤 학회가 좋은 학회?
저널도 다 같은 저널이 아니듯이 (nature나 science 같은 저널은 다른 레벨에 있는 저널이다), 학회라고 해서 모두 같은 학회가 아니다. 분야마다 Top 학회들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이게 헌법과 같이 명시적으로 누가 딱 정해 놓은 게 아니다 보니, 연구자들마다 Top 학회라고 생각하는 게 달랐다. 이를 해결하고자 정보과학회에서는 매 2년마다 Top 학회 목록을 주기적으로 갱신하고 있다.
https://www.kiise.or.kr/academy/main/getContent.fa?content_no=74&MENU_ID=130300
한국정보과학회
www.kiise.or.kr
한국 과학회에서 만든 목록이지만, 미국에 있는 교수들도 보통은 이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므로 정확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컴퓨터 보안 분야는 IEEE Security and Privacy, USENIX security, CCS, 그리고 NDSS까지 Top혹은 Big 4 conferences라고 부른다.
3. 그럼 학회에 출판된 논문들은 전부 좋은 논문?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저 Top 4 학회들 안에서도 정말 대단하구나 싶은 논문들도 있고, 뭐 이런 게 어쩌다 게재 승인되었나 싶은 것들도 있다. Top 학회에 출판된 논문은 아니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논문들도 정말 많다!
4. 논문을 위한 연구 vs. 연구를 위한 논문
한국이나 미국이나 Top학회에 얼마만큼의 논문을 출판했냐를 가지고, 졸업해서 취업의 향방이 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논문을 많이 출판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할 수 밖에는 없다.
여기서 논문을 위한 연구란, 1) Top학회에 게재 승인될만한 연구 주제를 잡는다, 2) 풀고자 하는 문제가 몇 개월 정도만 시간을 들이면 해결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3) 대부분의 연구의 시간을 리뷰어들이 쉽사리 논문을 비판 못하게 하기 위한 연구에 투자한다.
이런 방법으로 좋은 연구가 진행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요즘 느끼는 건, 이런 방식은 정말 성과주의에 기인한 보여주기 식 연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자면, 최근 나는 GPS spoofing 공격을 탐지하기 위해서 GPS 시그널들의 특성을 분석하던 중에, spoofing 공격은 항상 GPS 센서가 측정하는 noise level에 변화를 주는 것을 알았다. 그럼 이게 새로운 방법이냐? 아니다. 이미 연구자들은 noise level의 변화로 인해 GPS spoofing을 탐지하는 방법을 제시했고, 그 방법의 장, 단점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럼 뭐가 새로운 사실인가? GPS 센서 하드웨어와 시그널을 처리하는 소프트웨어의 개선으로 인해서, noise level이 꽤나 spoofing 탐지에 있어서 안정적인 척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의 GPS spoofing탐지 방법들은 기존의 GPS 센서들의 하트웨어 디자인이나 소프트웨어 설계 변경을 요구한다. 헌데, noise level을 이용한 spoofing탐지는, GPS spoofing 탐지하고자 GPS 센서 디자인을 수정할 필요도 없고 그냥 기존의 측정하던 noise level만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헌데, 이 사실만 가지고 Top 보안 학회에 논문이 게재 승인될 것인가? 그러기에는 쉽지 않다. 이미 알려진 방법에 실험적으로 밝힐 수 있는 사실은 "우리가 기존에 무시해왔던 해결 방법이, 사실은 제일 간단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이었어요" 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5. 끝 마치며
씁쓸하게도 나는 지금 졸업과 취업을 위해서 논문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지만, 취업해서는 틈틈이 연구를 위한 논문도 가끔은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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